<관계와 믿음, 신뢰 이런 단어들>

양 진 호
엘카페커피로스터스 대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닙니다. 모든 작물이 그렇듯 커피 역시 생산자와 유통업자,

판매자와 소비자를 거쳐 순환됩니다. 이 순환 고리에서 신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관계는 신뢰로 맺어져야 합니다. 엘카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커피를 말합니다.

인터뷰: 나성은영상: 이희경

양진호 대표

“지속가능함에는 신뢰와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스페셜티 커피라고 하면 맛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이력추적이 가능하다는 것, 내가 마시는 커피를 어떤 농부가 생산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스페셜티에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중심에 놓고 있는 건 스페셜티의 다양한 부분에서 서스테인어블, 그러니까 지속가능성인데 그게 여러 가지가 있어요. 커피산업의 지속가능성, 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삶의 지속 가능함, 품질에 대한 부분, 관계에 대한 부분, 모든 영역에서 지속가능성이 중요해요. 그래서 추구하는 방향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손님이 와서 단골이 되고 저희와 맺는 친근한 관계부터 시작해서 저희가 매년 농장을 가는 것도 그 연장 선상에 있어요. 그리고 제일 해결해야 하는 거는 저와 바리스타의 생계죠.(웃음)

농부의 모습

예전에는 지속가능성을 얘기할 때 농부에 관해서 얘기했어요. 농부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했죠. 그러면서 많은 스페셜티 커피 업체가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하러 산지를 갔는데 정작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건 농부가 아니라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거예요. 물론 나라에 따라서 달라요. 아프리카나 니카라과, 온두라스 이런 데는 소농들 위주로 되어 있거든요. 니카라과 같은 경우도 70~80%가 소농이에요. 거기는 농장주가 노동자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들의 권익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큰 농장 같은 경우는 노동자의 생계를 더 보게 되는 거죠. 우리가 커피를 비싸게 구매하는데 이 구매액이 농장주에게 다 가면 안 되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갔을 때 가치 있는 거잖아요. 농장주가 피커들에게 얼마의 비용을 지급하는지, 간식은 어떤 걸 주는지 이런 것들도 체크하는 편이에요. 피커가 교육을 잘 받으면 품질이 올라가요. 더 좋은 체리를 잘 수확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피커들의 교육도 얘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산지에서는 복지나 품질 향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소비국에서는 소비자가 자기가 낸 비용에 대해서 도덕적이든 품질이든 만족을 느끼도록 해야 하는 게 중간에 낀 우리로서는 중요해요.

이제 이 양쪽에 대해서는 고려가 많이 되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바리스타의 복지예요. 매장이 지속 가능한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인 거 같아요. 실질적으로 주변의 카페들 보면 생존율이 10%가 안 되니까요. 이 부분도 우리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해요. 업체가 유지돼야 이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력과 급여 등이 더 개선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당장 우리한테 닥친 현실이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서 소비자들이 우리도 먹여 살려줬으면 하는(웃음)

양진호 대표와 농부

균형이 중요하네요. 한쪽에 너무 치우쳐도 안 되고, 소홀해서도 안 되고. 그러면 엘카페가 추구하는 커피는 지속가능성과 맞닿아 있겠네요.

네. 그래서 계속 관계 맺고 품질이 유지가 되어야 해요. 지속가능성에는 신뢰와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농장도 우리를 믿고 열심히 일하면 그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는 부분. 우리도 농장을 서포트하면 농부와 노동자들이 품질을 더 올려줄 거라는 믿음. 그리고 소비자도 여기 와서 먹으면 실망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우리가 줘야 하는 거죠.

그게 지속 가능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거 같아요. 관계와 믿음, 신뢰 이런 단어들이.

“내가 하는 커피의 방향성은 좀 알 거 같은데

스페셜티 커피가 뭔지는 모르겠어요.”

저희가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하고 있잖아요. 들어보면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고 자금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갑니다. 그런데 굳이 왜 이걸 하시는 건가요?

어, 몰라서...(웃음)

아, 몰라서(웃음)

아, 이런 줄 알았으면 안 했을 텐데. 그런 거 같아요, 모든 일이 알았으면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 몰라서 시작하는 거 같아요.(웃음) 사실 몰라서 시작은 했지만 다이렉트 하는 사람들의 시작점은 다 똑같은 거 같아요. 내가 원하는 커피를 구하고 싶어서. 제가 처음 시작했던 시기는 좋은 커피 생두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 북유럽 같은 데 가서 커피 마시면 정말 맛있는데 그런 생두를 구할 방법이 국내에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해야 하는 거고. 그래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하는 거죠, 다들. 나는 더 맛있는 거 먹고 싶어, 이런 욕심으로 시작을 했다가 아, 알았으면 안 했겠다로 결론이 나는 거죠.(웃음)

하고 계시니 멈출 수는 없고.

그렇죠. 일단 시작하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하잖아요.

어렵네요. 사실 요즘은 스페셜티 커피가 너무 흔해진 이름 같아요. 홍보용으로 쓰는 용어가 된 거 같고. 스페셜티 커피 기준인 건 맞는데 딱히 저걸 스페셜티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이 드는 커피도 많고. 그런데 대표님은 스페셜티 커피를 어떻게 해석하시고,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순간 내가 스페셜티 커피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굳이 어떤 거 하냐고 물어보면 제일 유사한 게 스페셜티 커피여서 그걸 한다고 얘기는 해요. 하지만 그건 있는 거 같아요, 내가 하는 커피의 방향성은 좀 알 거 같은데 스페셜티 커피가 뭔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요즘 많잖아요. 아까 얘기한 거처럼 스페셜티 커피 정의를 80점 이상, 이력이 추적 가능하고 떼루아 특징이 드러난다는 게 가장 큰 범주인 거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마케팅으로 쓰는 업체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고 얘기할 수는 없고 스페셜티 커피를 하는 게 맞아요. 커피 하는 사람이나 소비자의 기준이 높아져서 저것도 스페셜티라고 얘기를 해야 하나 싶지만 십 년 전에는 그 정도도 엄청나게 훌륭한 커피였거든요.

시대가 흐르면서 기준이 엄격해지나 봅니다.

예전 정의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특별해 보이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지만, 저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 부분은 다시 정의 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이건 개인이 할 게 아니고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한 번 심각하게 우리가 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생두

“0.1점이라도 더 유지하기 위해서

비용을 쓰는 건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산지에서 생두를 구매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생두를 구매하시나요?

일단 거래할 농장인지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인 거 같아요. 그게 결정이 되면 생두를 고르는데요. 첫 번째는 깨끗하냐예요.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고 먹고 나서 입안이 개운하냐가 첫 번째 기준이고요. 두 번째는 단맛이 충분히 있느냐. 세 번째는 캐릭터가 어떠냐.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얼마나 밸런스가 좋냐. 이렇게 크게 네 가지예요.

구매하고 나서도 품질을 유지 못 하면 맛이 떨어지겠죠. 어떤 방법으로 품질을 유지하시나요.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품질을 유지할까가 고민인 거 같아요. 포장할 때 요구조건이 많은 편이에요. 디펙트를 어느 정도로 선별할지도 기준을 좀 높게 잡는 편이고요.

사실 산지에서 생두가 예뻐 보이게 폴리싱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브러쉬가 돌아가고 있으면 생두를 통과시켜요. 겉에 은피라고 하는 찌꺼기 같은 게 붙어 있거든요. 그걸 벗겨내서 반짝반짝 광택이 나게 하는 공정들이 있어요. 일단 저는 그런 거 절대 못 하게 해요. 그걸 하면 스크래치가 나고 커피 품질이 오래 갈 수 없고 빨리 손상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예뻐 보이기보다는 품질을 유지하게 해요.

그리고 예전에는 마대 자루에 커피를 넣어서 외부 공기가 맞닿았었는데 요즘은 외부환경에 손상 당하지 않게 산지에서 그레인프로라든지 진공포장으로 포장해요. 예전에는 커피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기도 했어요.

휘발유 냄새요?

생두가 배 안에서 뭐랑 같이 있었는지 모르잖아요. 그럼 다른 냄새가 섞여 들어가고 수분도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품질 손상이 심했었는데 요즘에는 외부 이물질에 의한 손상이 없게 포장해요. 그다음에 냉장 컨테이너를 사용해서 한국에 들여오고 있어요. 배가 적도를 두 번 정도 지나서 한국에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컨테이너 내부 온도가 꽤 많이 올라가요. 예전에는 컨테이너 실을 때 밑에 깔아달라고 했어요. 아래쪽에 넣으면 위쪽보다는 영향이 적어서 그렇게 했었는데 냉장 컨테이너를 쓰고 나서는 그런 스트레스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는 편이에요. 한국에 도착했을 때 커핑을 해보면 원래 커핑했던 품질보다 오히려 약간 올라가서 도착하는 경우도 있어요.

돈이 만만치 않게 들겠군요.

품질을 높이는 건 돈을 쓰는 작업이죠. 그런데 저희가 구매하는 커피 같은 경우는 점수 1점 차이에 가격이 많이 왔다갔다 해요. 그러다보니 0.1점이라도 더 유지하기 위해서 비용을 쓰는 건 타당하다고 생각해요.